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게 하셨다고요. 왜요? 우리의 보상과 영원한 집은 여기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신령한 것으로 약속하신 모든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린 부활 사상속에 있죠. 그래서 우리가 다시 살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다는 것이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고 핵심이지 우리가 믿은 것으로 이 세상에서 무슨 상을 받으며 어떤 대접을 받는냐는 것은 우리 이 생각속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를 향하여 가고 그러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은 악하고 어둡고 그리고 헛된 되지만 우리는 영원을 준비하고 영광된 자리로 약속을 받고 이 세상을 나그네로 지나가며 그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증거하는 자로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왜 때마다 위험을 무릎쓰고 왜 매일 죽느냐 그 이유는
부활과 영생을 목표로 하고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베푸신 구원과 은혜를 나누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환나과 고난을 피하지 않기 때문에 때마다 환난을 당하고 날마다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요, 우리는 영원한 약속과 영광의 자리가 내세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내신 것 같이 그리고 그 구원을 위하여 이제 우리를 부르사 우리를 제사장으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저기에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십자가를 모릅니다. 그를 쫓는 우리를 모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조롱과 훼방과 핍박과 온갖 유혹을 해대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오래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확장하시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불러내시는 일에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께서 구원의 문을 열어 놓고 계시기 때문에 그 구원의 사역자로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영혼들 앞에 증언자로 하나님의 복되신 구원을 전달하는 자로 또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함께 가기 위해 쓰임받는 자로서 예수그리스도와 믿음의 이웃들과 구원을 받아야만 되는 모든 세상의 사람들을 향하여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상하고 대적하는 모든 비난과 오해와 조롱과 협박을 감수하기로 하는 겁니다. 영원을 준비하고 있고 내세를 소망으로 갖고 있으되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가 누군지를 모르고 아니 우리를 향하여 이를 갈고, 우리를 보기 싫어 하고 괜히 우리를 핍박하는 이 속에서 우리가 얻은 구원과 그리고 저들에게 하나님께서 아직도 가지고 계시는 은혜와 긍휼을 베풀기 위하여 내가 존재해야 됩니다. 내가 이 일을 안하고 입 다물어 버리면 우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때마다 위험을 무릎쓰고 날마다 죽는 이유가 뭐냐 그러면 영원한 소망을 위해서며, 그 영원한 소망을 하나님께서 나와 또 얼마든지 부르신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기 때문에 그걸 외면하지 않는 정당한 신자라면 그의 생애 속에 때마다 날마다 고난과 죽음을 각오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활이라는 것은 내가 이제 죽어도 나는 부활할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살 것이다. 그 부활사상을 어떻게 이해했느냐에 따라서 오늘 이 현실을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만 되느냐라는 가장 중요한 하나의 책임을 우리에게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 23-
에베소에 오래 머물면서 전도하였는데 구원받을 자도 많았지만 대적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런 어려움을 감당하는 이유는
그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외면하지 않는 이유는 주께서 베푸신 구원을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고 싶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동참한 까닭이요 또 우리가 하나님앞에 설 때에 평가받는 일이 이 세상에서의 일의 가치로서가 아니며 이 세상에서 오래 산 것도 아니며 누가 주를 위하여 신자답게 살았느냐로 평가 될 것이니까 그는 때마다 고난을 무릎쓰고 날마다 죽는 일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육신에 속한 자처럼
범인 처럼
나에게 당한일에 대해서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나를 지키고 내 자존심을 위해 싸운 다면 그게 어찌 부활 소망을 가진 신자가 할짓이냐 이거예요.
부활소망을 갖고 있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당한 다 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 편을 들고 신자 답게 살고 그걸 외면하지 않아야지
내가 주를 편들고 신자같이 살아야 주 앞에서는 날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인데....
세상적인 차원에서의 자존심과 자기 힘과 이런 것으로 싸우지 말고....
이 세상이 최종 목적지인 것 같이 이 세상에서 받는 보상이 최고의 보상인 것 같이 그렇게 여러분을 부추기는 건 다 악한 동무입니다.
약삭빠르게 사는 것을 권면하는 친구
구역공부 모여서 신령한 이야기를 하고 헤어지세요.
어떻게 하면 애를 좋은 학교 붙이는가 어디가면 돈을 많이 버는가? 이딴 얘기를 하는 사람은 그날 즉시로 파면을 시키세요. 경고, 한번만 더 하면 출교요, 아시겠어요
그건 결코 자랑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는 얘기는 어느 집 냉면이 맛있더라 이걸 넘어가면 안되요. 그 이상은 하지 마세요.
이 세상의 보상과 이 세상의 쾌락과 이 세상에서 여러분을 증명하는 일들로 인하여 여러분들이 정보를 주고 받는 일을 구역에서 하지 마세요. 그런 걸 가르춰주는 친구들하고 가까이 만나지 마세요.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신자가 누굽니까? 사도행전 20:22-24
고후 11:28-끝
바울은 자기를 보호하거나 자기를 변명하거나 자기를 증명하고 있지 않아요.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아니하냐 이런 마음으로 가세요. 날 우습게 보지마 일로가지 마세요. 제발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렇게 똑 부러지게 하고, 그러지 마세요. 얼굴에다 똑똑 이런 거 쓰고 다니지 마세요. 그냥 이렇게 눈 동자도 좀 풀어지고 그저 이렇게 다소 곳하고 그저 먹다남은 똑떡같이 먹다버린 밥풀같이 그렇게 좀 살아주세요. 신자는 이렇게 고개 빠딱빠딱 들고 닭대가리 움직이듯이 그렇게 안 살아요. 뭐든지 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 주세요. 부탁이예요.
신앙이란 그런게 아니예요.
신자는 그런게 아니예요. 자기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예요.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고 누가 실족하면 내가 애타하는 나를 위해서 이야기할 것이 있다면 나의 약한 것외에는 할 말이 없는 이게 부활생명으로 가는 신령한 신자들의 마땅한 삶의 자세요 태도요, 원리요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요구하시지도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 내놓으라고 하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고자 우리에게 순종과 겸손과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이야 왜 못내놓겠습니까? 우리보고 돈을 내놓으라고 하십니까? 우리보고 수명을 내놓으라 하십니까? 주께서 우리에게 무슨 능력을 내놓으라고 하십니까? 꾀를 내놓으라 하십니까? 근데 우리는 왜 자꾸 우리가 가진 것을 내놓아 주의 일을 방해하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미련한 것을 돌아보소서. 우리로 지혜롭게 하사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이 일에 영화로움과 그 비밀과 지혜를 알게 하사 우리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겸손하게 하옵소서, 인내하게 하옵소서, 십자가를 지게 하시옵소서. 우리로 약한 마음을 갖게 하시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시고 오직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게 하사 주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름앞에 아멘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는 모든 일에 십자가의 승리를 우리로 목표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속에서 증거되고 우리의 삶에 생명의 열매가 맺혀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와 구원이 증거되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복된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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